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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헌[애국지사] 게시판 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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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종헌[애국지사]
작성자 태안문화원 등록일 2016-05-24 조회 1273
첨부 png 이종헌추모비.png

 

애국지사 이종헌(李鍾憲)

고종 27년(1890) 4월 9일 태안군 안 면읍 승언리
91번지에서 규삼(奎 三)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일찍부터 고향에서 한문을 배우고 있었는데,
마침 승정원 (承政院)의 동부승지 벼슬을 지내 던
김병년(金炳年)이 안면읍  승언리로 낙향하여, 신교육을 통해 조국 광복을
꾀하고자 1906 (광무 10년) 12월에 광영신숙(廣英新塾)을 세웠다.
(신교육과정이  적용되었으므로 통칭 학교라 호칭했다).

이 때, 이종헌은 한문공부를 그만두고 새로 세운 광영학교 고등과
에 입학하여 1918년 본교를 졸 업하고 이어 모교의 교사로 취임 했다.

모교의 교사가 된 이종헌은 남달리 애교심과 사명의식이 투철하
여 후진 교육에 최선을 다하였으므로 학교는 나날이 발전해 갔다.

그후 광영학교 교장으로 취임한 이종헌은 대한독립결사단을 조직
하고 단장이 되어 조국광복을 위해 활동을 하여 오던 중 마침내
1919년 3월 1일 천지를 진동시킨 독립만세 시위가 일어나자,
종헌은 이에 합세하여 3월 6일 서산읍 야소(耶蘇)교회(敎會)와
천도교회가 중심이 되어 독립만 세를 부르니 순식간에
수천 명이 운집하여 대 시위를 폈다.

이같은 군민의 대 시위에 용기를 얻은 이종헌 교장은, 교직원,
학생, 그리고 애국 청년들과 함 께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더불
어 만세 3창을 소리 높여 불렀다.

이같이 시위를 전개한 이종헌은 조국 광복을 확신하고,
이에 따 라 대한독립결사단 운영에도 가 일층 헌신하였다.

1919년 11월 평안남도에서 대한독립청년단 검거사건이 일어났는데,
이에 관련된 이종성 (李鍾聲)이 대한독립단 수령 윤종정(尹
宗楨)의 지시를 받고 황해도, 경기도, 충청남도 등지 를 왕래하
활약하던 중, 마침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재무관 한태국(韓泰國),
서병철(徐丙轍)을 만나 힘을 합치게 되었다.

이리하여 서병철은 자기 고향인 서산 해미에 내려와 대한독립단
서산 지단을 조직하고 앞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해 줄 것을
이종성에게 의뢰한 바 그는 이에 동조하여 밀령을 받고 안면읍
내려와 이종헌 교장을 만나게 되었다.

밀령을 받은 이종헌은 애국적인 뜻이 서로 같으므로 앞으로 조국
광복을 위해 신명을 바쳐 싸우 기로 굳게 다짐하고 맹우(盟友)
되었는데, 이 때 이종헌은 대한독립단 서산 지단장에 추대되었다.

 1977년 대한독립 유공자로 추천되어 대통령표창을 추서() 받았으며,

1982년 안면읍 승언리에 추모비가 설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