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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읍] 용천골의 용굴 게시판 상세보기

[태안문화원] - 지명 및 전설 내용 상세보기 입니다.

제목 [안면읍] 용천골의 용굴
작성자 태안문화원 등록일 2016-06-14 조회 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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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읍] 용천골의 용굴

안면읍 창기리 3구, 이곳은 태안지역 곡창지대 중의 하나이다.

땅이 비옥하고 메마르지 않아서 농작물이 잘 된다.

그런데 이 곳을 「용천골」이니 「쌍생골」이니 하고 부르는 사
연이 있다. 오랜 옛날 이곳에 젊은 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웬일인
지 이들 부부에겐 자식이 없었다.

금슬이 좋은 이들 부부였지만 슬하에 자식이 없자 부부의 정이
자꾸 식어만 갔다.

설상가상으로 가뭄이 오래 계속되고 해마다 흉년이 겹치니 생활
고 또한 말이 아니었다. 이럴 즈음 부인이 꿈을 꾸었다.

꿈에 나타난 괴물은 난생처음 보는 것이었는데 머리는 용의 형상
이요 몸뚱이는 사람이었다.

그 괴물은 부인에게 이렇게 말하고 사라졌다. “너희집 논 가운
데에 있는 바위를 캐어내라.

그리하면 가뭄도  끝나고 또 너희 집에 자식도 태어나리라.”
희한한 꿈을 꾼 그 부인은 이튿날 남편과 함께 그 바위를 뽑아
냈는데, 그 자리에서 물이 용솟음 치듯 솟아 나왔다.

그 물줄기가 얼마나 컸던지 그 동네의 논을 흥건히 적시고 농작
물에도 큰 도움을 주어 풍년을 이루었다.

오랜 가뭄 끝에 얻은 물로 사람들은 기쁨에 들떠 있었다. 이렇
게 바위를 뽑아 샘을 만든 후 이 부인에게 태기가 있었는데 열
달 후에 딸 쌍둥이를 낳았다.

자식이 없던 이들 부부에게는 아들이 아닌 것이 서운했지만 딸
둘을 한꺼번에 얻은 기쁨도 이만저만 아니었다.

동네 사람들로 부터도 이들 부부에게 축하 인사가 끊이지 아니했
는데, 호사다마인지 부인이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어디가
아픈게요?” “모르겠어요.

뚜렷이 아픈데도 없는데 기운이 없고 몸이 마르네요.” “이상하
지 않소.

뚜렷한 병도 아닌데 당신의 몸이 점점 쇠약해지니 모를 일이구
려.” 그러나 부인에게는 큰 마음고생이 있었다.

그것은 밤만 되면 꿈에 나타나는 험상궂은 용의 모습 때문이었
다. 온몸에 피투성이가 된 용은 밤마다 꿈에 나타나 이런 말로
부인을 괴롭혔다. “왜, 나를 못살게 하느냐!” “왜, 나를 괴롭
히느냐!” 이렇게 부르짖으며 부인에게 달려 들다가 가버리곤 했
다.

이렇게 꿈 속에서 용에게 시달리던 부인은 끝내 죽고 말았다.

남편은 쌍둥이 딸을 젖동냥으로 키웠는데 다행히 딸들은 튼튼하
고 예쁘게 자라 어느새 처녀가 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또
벌어졌다.

그것은 밤만 되면 우물 속에서 이상한 울음소리가 들려오는데,
다름 아닌 부인의 울음소리였다.

그 후부터 샘물이 마르고 가뭄이 들었으며 그 곳 들이 메말라 농
사를 지을 수가 없게 되었다.

식수까지 부족하여 동네 사람들은 옛날처럼 다시 한재와 싸워야
했다. 이렇게 괴로운 나날을 보내는 속에 또 이들을 괴롭히는 것
은 밤마다 우물에서 들려오는 쌍둥이 어머니의 울음소리였다.

이렇게 되자 남편마저 몸져 눕게 되었고, 큰 딸이 아버지의 고민
을 듣게 되었다.

그 날 밤, 남편이 험상궂은 용이 부인의 허리를 물고 하늘로 올
라가려고 하는 꿈을 꾸었는데, 꿈에서 깨어보니 옆에서 자고 있
어야 할 큰 딸이 없어 밖에 나가보니, 용이 소복을 한 딸을 입
에 물고 가는 것이었다.

이에 아버지는 화가 나서 용을 향해 소리쳤다. “이놈아, 내 딸
을 놓고 가거라.” “내 딸을 놓고 가거라!” 남편이 고래고래
소리치니 나르던 용이 우물로 뚝 떨어졌다.

그러나 큰 딸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용이 떨어진 우물은 물
이 나오지 않았다. 그 후에, 작은 딸이 우물을 보니 언니가 소복
을 하고 밤마다 우는 것이었다.

작은 딸은 이같은 사실을 아버지께 말했다. “언니가 밤마다 우
물가에서 소복을 하고 울고 있는데 아무래도 이상해요.

또 무슨 변고가 생길 것 같아 불안해요.” 이 소리를 들은 아버
지는 다음날 우물을 메워버렸다.

그러자 밤만 되면 큰딸이 아버지에게 나타나서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아버지, 우리집 옆집에 있는 논 가운데 큰 바위가
있지요.

그것을 빼내주세요.” 그래야 내가 승천할 수가 있어요." 하루
이틀이 아니고 여러 날 동안 큰 딸이 사정하자 아버지는 논에 있
는 그 큰 바위를 빼냈다.

그러자 바위 밑으로 큰 구멍이 뚫렸다.

그러나 그 구멍에서는 물이 흐르지 않았다. 이제는 딸의 소원을
들어주었으니 별일이 없겠지 하고 안심하고 있는데, 큰 딸이 다
시 나타나 또 다른 사정을 말했다. “바위가 빠진 자리에서 물
이 나와야 하는데 물이 나올 때까지 동생이 매일 나가 기도하게
해주세요.” 하는 수 없이 동생은 매일 밤 우물에 가서 기도를
했는데, 기도한지 여러 날이 되자 우물에서 물이 나왔다.

그 날밤 아버지가 다시 꿈을 꾸니 큰 딸이 웃으며 승천하는 것이
었다.

아버지가 밖에 나가 승천하는 딸을 보는데, 갑자기 그 험상궂은
용이 새로 뚫린 우물에서 나타나 두 딸을 한꺼번에 물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아닌가? 이를 본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말았다. 그 후 사람들은 용이 나온 샘이라 하여 「용천(龍泉)
골」이라 불렀고 또 용이 이쪽 샘에서 저쪽 샘으로 옮겼다 하여
「쌍샘골」이라고도 불렀는데, 그 이름이 오늘날까지 전해져 오
고 있다. 이 지역 인근 황도리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초순에 풍
어를 기원하는 민속의 하나로 일종의 제례의식인 「황도붕기 풍
어놀이」가 거행되고 있다.



당주는 이 사슴이 어떤 위험에 빠져 있다고 직감하고 방문 틈으
로 밖을 보니 호랑이 한마리가 눈에 불을 켜고 방안을 노려보고
있었다.

당주는 무섭고 떨려 몸을 도사리다가 마침 방안에 숯불이 이글거
리는 화롯불이 있는 것을 보고 그 화롯불을 들어 호랑이에게 냅
다 던졌다. “이놈! 물러가거 라!” 이 뜻하지 않은 불의의 습
격을 받은 호랑이는 "어흥"소리를 지르며 혼비백산해 달아났다.
당주와 사슴은 안심을 하고 같이 잠자리에 들었는데 꿈에 산신령
이 나타났다.

산신령은 아주 언짢은 얼굴로 당주에게 말했다. “내가 지금 호
랑이를 쫓아가다가 사기점골 뒷산 바위에 말의 다리가 부러졌으
니 그대는 지금 당장 가서 말의 다리를 찾아오너라.” 하는 것이
었다.

당주가 잠에서 깨어나 급히 사기점골 뒷산 바위 밑에 가보니 사
기말 다리가 하나 있었다.

당주는 그 다리를 원상태로 해놓고 집에 와보니 사슴이 없었다.
“사슴아 어디 있니?” “이제 호랑이도 갔으니 무서워 말고 나
오너라.” 그래도 사슴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상이 여긴 당주가 불을 켜고 보니 방안에는 사슴 뿔이 빠져 있
을 뿐 사슴의 몸뚱이는 없었다.

“이상한 일이구나.

그렇다면 사슴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당주는 수수께끼 같
은 사실에 의구심을 품은 채 살아갔다. 그런 일이 있은 다음
해, 이 마을에는 심한 흉년이 들었다.

비가 한 방울도 오지 않아 논과 밭이 거북이 등처럼 갈라지고 초
목도 시들었다.

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풀뿌리와 소나무 껍질로 겨우 연명
을 하고 있었는데 설상가상으로 부황병과 갖가지 질병까지 돌았
다. 마을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우리가 무슨 잘못을 저
질렀나 봐.” “산신령이 노하셨나?” “그동안 우리가 산신제
지내는 것을 너무 소홀히 한 것이 사실 이야.” 마을 사람들이
시름에 쌓여 있던 어느날, 당주가 다시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늙은 중을 만났다. 늙은 중은 당주를 나무라듯 말했다 “그동안
당신들은 산신제 지내는 것을 너무 소홀히 했소.

보다 못해 내가 어려움에 빠진 중생들을 건지려 왔소.” “어떻
게 하면 이 고해에 빠진 사람들을 구할 수 있습니까?” 그러자
늙은 중은 당산(堂山)을 가리키며 저 당산에 극진히 지성을 드리
면 가뭄과 질병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다시 당부하는 말을 남겼다. “만일 당산에 제를 올려
이 지방 가뭄이 끝나고 질병이 물러가 면 그때부터 저 산을
「국사봉(國師峰)」이라 부르시오.

꼭 그래야 합니다.” 이렇게 말한 늙은 중은 다시 사라졌다.

당주는 마을 사람들을 다 모이게 하여 다시 당산에 천신을 모시
고 청수를 떠다 제를 지냈다.

그랬더니 갑자기 하늘에 먹구름이 덮이며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데 연 3일간이나 내려 가뭄이 끝나고 농작물이 소생했으며 유행
병도 사라지게 되었다. 얼마 후 꿈에 나타났던 그 노승이 다시
나타나 국사봉을 가리키며 「앞으로 복된 마을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래서인지 이 지방은 비옥한 땅과 함께 바다의 자원이 늘 풍부
했다. 이때부터 이 산을 「국사봉」이라 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