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고남면] 노루가 잡아준 명당마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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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태안문화원 | 등록일 | 2016-06-14 | 조회 | 4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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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루땡이란 속칭 자연부락의 지명으로서 “노루땅”의 와전 인 것이다. 이 같은 사례는 우리들의 주변에서 흔히 찾아 볼 수 있는 것으로서 실례를 들면 강변이 “갱변”으로 간수가 “갠 수”로, 벼락이 “베락”으로 발음되는 등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으니, 이는 “ㅣ”모음이 추가되는 현상으로 대중속에서 언어 가 습관상 굳어져 오늘에 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이 노루땡이는 고남면의 장곡리 2구에 있는 자연부락 명인데, 이 곳이 노루땡이라 불리우게 된 연유는 다음과 같다. 조선조 영조때의 일이다. 이곳에 고씨(高氏) 할머니가 살고 있었다. 따뜻한 어느 봄날, 산나물을 뜯으려고 뒷동산에 올라간 할머니 가 열심히 산나물을 뜯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총소리가 요란스럽 게 들려오고 있었다. 나물을 뜯다 깜짝 놀란 할머니는 잠시 손을 멈추고 총소리가 나 는 곳을 향해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바로 이때였다. 노루 한 마리가 허둥지둥 뛰어와 할머니 앞에 다가서더니 무엇인 가 도와 달라는 시늉을 하다가 급히 치마 속으로 숨어드는 것이 었다. 갑자기 당한 일이라 할머니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사냥 꾼에 쫓기고 있는 노루가 불쌍하여 재빨리 치마를 벗어 노루를 덮어주고, 그 위에 다시 나무잎을 모아 감쪽같이 숨겨 주었다. 이렇게 노루를 숨겨주고 주위를 살피고 있는데, 갑자기 산등성이 에서 총을 든 포수 한 사람이 헐레벌떡 할머니 쪽으로 달려오더 니 숨찬 목소리로 “할머니 방금 이쪽으로 도망쳐온 노루를 보 지 못했습니까?” 하고 묻는 것이었다. 이에 할머니는 침착한 목소리로 “예? 노루요, 노룬지 산돼지인 지는 모르지만 방금 송아지만한 산짐승 한 마리가 저쪽 계곡으 로 도망쳐 갔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이에 사냥꾼은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노루가 달아난 쪽으로 뛰어 가는 것이었다. 얼마후 할머니는 안도의 한 숨을 길게 쉬며 노루를 꺼내 주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노루야, 이젠 살았다. 사냥꾼은 저쪽 으로 뛰어갔으니 그의 반 대쪽인 이쪽으로 도망 치거라.” 이 말에 노루는 알아 들었다는 듯이 고맙다고 머리를 끄덕거리며 인 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노루는 즉시 할머니 곁을 떠나지 않고 잠시 머뭇거리다 가 갑자기 할머니의 치마자락을 물고 끌어 당기며 따라오라는 시 늉을 하는 것이었다. 이를 눈치챈 할머니는 노루를 따라 한참 동안 걸어갔다. 이렇게 얼마쯤 걷다가 양지바른 아늑한 곳에 이르자 노루는 발길 을 멈추고 서더니 앞발로 땅을 파헤치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위치와 주위 환경 등으로 미루어 보아 풍수지리를 모르 는 사람이라도 산소자리로 적지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이에 할머니는 “응! 알았다. 이곳이 산소자리로서 좋다는 말이 지? 그러니까 우리 할아범이 죽거든 이 자리에 무덤을 쓰란 말이 지, 노루야?” 이렇게 할머니가 묻자 그렇다는 듯이 머리를 여러 번 흔들고는 어디론가 뛰어갔다. 이상한 일도 다 있구나. 할머니는 반신반의 하면서도 손해볼 것 없으니 노루가 시킨대로 해보자 생각 하고 그곳에 큰 돌을 주어다 표시해 놓고 집으로 돌 아왔다. 이런 일이 있은 수년 뒤에 마침내 남편이 죽었다. 할머니는 지체하지 않고 수년 전에 노루가 알려 준 그 곳에 남편 의 무덤을 썼다. 그후 고씨 할머니의 집안은 점점 가세가 번창해지고 자손들이 창 성하여 남부러워 할 것이 없었다. 이같은 사실이 널리 동네에 알려지자 마을 사람들은 입을 모아 노루가 잡아준 산소자리가 명당이라 하여 그후부터 이 동네의 이 름이 「노루땡이」로 불리워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이 곳 장곡리 마을에는 고씨 할머니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데, 노루 고기는 절대로 먹지 않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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