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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흥면] 꽃이 된 며느리의 넋 게시판 상세보기

[태안문화원] - 지명 및 전설 내용 상세보기 입니다.

제목 [근흥면] 꽃이 된 며느리의 넋
작성자 태안문화원 등록일 2016-06-14 조회 625
첨부 jpg 꽃이 된 며느리의 넋.jpg

[근흥면] 꽃이 된 며느리의 넋

근흥면 정죽리1구에 정산포(程山浦)란 조그마한 포구가 있는데,
이 포구는 아랫 마을과 웃 마을로 이뤄져 있으며, 인구는 약 120
여명이 살고있는 평화로운 마을이다.

주민들은 주로 어업과 농업을 겸하고 있는데, 근래에 들어와서
는 김(海苔)의 양식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이 포구는 아
래 윗마을 합쳐야 모두 1킬로 남짓한 길이인데 마치 활같이 구부
러져 있어 아늑한 느낌을 주는 비교적 조용한 포구다. 그런데 옛
날 이포구에 며느리 시집살이를 혹독하게 시키기로 이름난 시어
머니와, 그와는 대조적으로 마음씨 착하고 효성스러운 며느리가
함께 살고 있었다.

고부간의 갈등은 예나 지금이나 가정불화의 원인이 되고 있지만,
특히 옛날의 고부간의 갈등과 불화는 주로 시어머니가 일방적으
로 며느리를 구박함으로써 일어났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
다. 지난날의 수직적 가정사회에서 며느리의 위치란 그저 순종하
고 복종해야만 하는 굴종, 그것 뿐이었다.

그러기에 지난날 우리 나라 며느리들의 시집살이에 대한 애화는
하나의 문학으로 승화되어 오늘에까지 전해지고 있는데, 그 사례
를 정음사 발행「한국고전 비평집(1)의 민요의 연구」에 실려 있
는 민요를 보면 다음과같다.  사촌형님 사촌형님 시집살이 어떻
던고  열새무명 반물치마 눈물씻기에 다젖었네   열냥짜리 은
가락지 콧물씻기에 다녹아버렸네 그리고 서산군 발행(1982)의
「신간 서산군지 풍속조」에 보면 다음과 같은 민요가 실려 있
다.   형님형님 사촌형님 시집살이 어떻던고  부디부디 일러주
오 동생동생 사촌동생   시집살이 말도말게 다홍치마 걸어놓고
  들어올적 나올적에 눈물씻기 다젖었네 이와 같은 유사한 민요
는 전국 각처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으니 당시의 고된 시집살
이를 이렇게 노래에 실어보냈는지도 모른다.

오늘날에도 고부간의 갈등이 완전히 소멸된 것은 아니지만, 지난
날에 비하면 거의 없어졌다해도 지난친 말은 아닐 것 같다.

특히 오늘날에 있어서는 사회체제 변화에 따른 핵가족의 파생
과, 문화 발전에따라 국민 생활의 질이 향상되어 가고 있기 때문
에 자연히 고부간의 갈등도 사라져가는지 모른다. 그러나 옛날
의 고부간의 갈등은 극단으로 치달았기 때문에 결국은 며느리쪽
일방이 비극으로 끝나는 사례가 속출하였는데, 이 정산포에 있었
던 고부간의 갈등도 예외는 아니었다.

시어머니의 혹독한 구박을 받으면서도 이에 순종하면서 살아가
던 며느리가 어느날 비지땀을 흘리며 열심히 벼방아를 찧고 있는
데, 시어머니가 “혼자 방아찧기에 얼마나 힘드느냐” 하고 위로
를 하기는 커녕 오히려 잔소리가 심하니, 며느리도 은근히 화가
치솟아 더욱 힘주어 방아를 찧자 곡식 낱알 몇개가 절구에서 튀
어나와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며느리는 얼떨결에 낱알을주어 입에 넣고 씹고 있었다.

마침 이를 보고 있던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절굿공이를 빼앗아 들
고 며느리를 마구 때리는 것이었다.

“이년아, 쌀 한톨이 얼마나 소중한데, 네 맘대로 주워 먹어.

이 시어머니를 무얼로 알고 그러느냐.

어디서 배운 행동이냐.” 하며 계속 때렸다.

며느리는 “어머님, 제가 잘못했으니 용서하여 주십시오.”하고
빌고 “어머님, 어머님,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않겠습니다.

용서하여 주십시오.”하면서 그대로 쓰러져 숨을 거두고 말았다.

얼마나 비통했으면 눈마저 감지 못하고 죽었으랴. 이듬해 봄 며
느리의 무덤에는 이름 모를 가냘픈 꽃이 무덤을 덮을 정도로 활
짝 피어 났는데, 그 꽃의 생김새는 마치 사람의 혓바닥같이 생
긴 빨간 꽃잎 바탕에 쌀모양의 흰 빛이 돋보이는 모양을 하고 있
었다. 동네 사람들은 처음 보는 이 꽃을 보면서“정말 이상한 꽃
이로다.

생김새로 보아 이는 분명히 쌀을 씹다죽은 며느리의 넋이 꽃으
로 피어난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꽃의 이름을 「며
느리 넋의 꽃」으로 부르자고 했다.

지금도 이 정산포 입구 바른 쪽 당집 근처에는 이 꽃이 아름답
게 피어나고 있어 그 유래를 아는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유
심히 감상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