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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문화원] - 지명 및 전설 내용 상세보기 입니다.

제목 [소원면] 부엉재와 곰쓸개
작성자 태안문화원 등록일 2016-06-14 조회 520
첨부 jpg 부엉재와 곰쓸개.jpg

[소원면] 부엉재와 곰쓸개

조선시대의 이야기라 전한다.

한양에서 부호(富戶)로 통하는 박장자(朴長者)네 집은 부러울
것 없이 살기로 손꼽혔다. 우리나라에서 제일가는 부호였지만 배
운 것은 별로 없었다.

부족한 것이 없는 그였지만 걱정이 하나 있었다.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알 수 없는 병에걸려 병석에 누워 일어나
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는 대를 잇고 집안을 일으키기 위하여 아들이 살아야 했기에
중국까지 사람을 보내 유명한 의사를 초청해 진찰을 해 보았으
나 누구하나 신통한 처방을 내리지 못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초
청하지도 않았는데 중국에서 온 의사가 집에 와 병을 봐 주겠노
라고 하며 사랑방으로 들어오니, 박장자는 못마땅했지만 아들을
보여 주었다. 남루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의사는 아들의 손목
을 잡고 두어 번 흔들더니 빙그레 웃으며 『별것도 아닌 것을 가
지고 떠들썩 했구료.

기진맥진한 까닭도 알겠고….

여보쇼! 산곰의 쓸개를 조금만 먹이면 거뜬하겠소.』 하였다. 저
런 거지가 뭘 알겠느냐고 생각 하였지만 혹시 아들의 병이 낫지
않을까 하여 전국에서 이름 난 포수들을 불러들여, 많은 돈을 주
고 곰을 잡게 하였다. 곰 사냥을 구경하기 위해 박장자와 거지
의사는 황포수와 함께 충청도에 들어섰다.

그들은 “목천”(木川) 땅에서부터 산맥을 따라 서해쪽으로 갔지
만 곰을 구경하기가 쉬운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덕산”(德山)
땅 가야산에 이르러 곰의 발자국을 발견하고는 산을 샅샅이 뒤
져 발자국을 따라가보니 산을 넘고 “서산”을 지나 “태안”을
지나 서해바다 쪽으로 뻗어 있었다. 황포수는 『곰이 바닷가에
있다면 잡기가 훨씬 수월하다.』고 하였다.

박장자는 아들을 살리려는 초조한 마음으로 “철마산”을 오르는
데 앞서가던 몰잇군이 『곰이다.』하고 외쳤다. 거지의사는 『곰
을 잡거든 쓸개부터 먼저 꺼내라.』 하였다.

곰을 발견한 황포수는 총을 당겼다.

산이 울리는 듯한 곰의 비명소리와 함께 곰이 쓰려졌다.

포수는 의사의 말대로 배를 갈라 쓸개를 꺼내어 나무에 매달아
놓았다.

박장자는 어서 한양으로 올라가자고 서둘렀으나 사람들이 우선
시장하니 밥을 해야겠다고 하여 밥을 지어먹은후 떠날 차비를 하
며 나무에 매단 곰쓸개를 챙기려고 하니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
다. 곰쓸개를 찾으려고 소동이 일었으나 쓸개는 없었고, 매달렸
던 자리에 이상하게 부엉이 한 마리가 다리에 화살을 맞고 앉아
있었다.

황포수는 부엉이가 쓸개를 먹었다며 총을 겨누었는데, 거지 의사
가 나타나 『어허, 사람병은 고쳤구만그려.

가만히 계시요.』 하면서 접시를 가지고는 나무 아래로 가서 부
엉이 다리에서 떨어지는 피를 받고 다리의 화살을 빼주어 날아가
게 하였다. 부엉이를 날려보내자 박장자와 황포수는 화를 냈지
만 의사는 아랑곳 하지않고 한양으로 가자고 했다. 깊은 밤에 도
착하였는데 집에 들어서자 부엉이 소리가 들려왔다.

박장자가 마루에서 나무를 바라보니 부엉이 한마리가 조용히 앉
아있었다.

의사는 담아온 부엉이 피를 아들에게 먹였는데, 병석에 있던 아
들이 금방 일어나 방문을 열고 밖을 쳐다보니 부엉이가 더욱 크
게 울었다. 아들이 완쾌하자 부엉이는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는
데 다름아닌 이곳 철마산의 부엉재 (부엉바위가 있는 고개)로 날
아온 것이었다. 이곳 부엉재로 날아온 부엉이는 곰쓸개를 먹고
백년이나 살면서 한양과 이곳을 오가며 울었고, 이곳에 새끼를
낳았는데 후손까지 이곳에 좋은 일이 있으면 울었으며, 슬픈 일
이 있을때는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돌아오곤 하였다 한다. 지금
도 이곳 사람들은 부엉이가 울면 좋은 일이 생긴다고 믿고 있으
며, 부엉이가 울던 이 바위를 부엉바위라 하고, 부엉바위가 있
는 이 고개를 부엉재라 부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