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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북면] 하늘에서 내려온 <학암> 게시판 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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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원북면] 하늘에서 내려온 <학암>
작성자 태안문화원 등록일 2016-06-14 조회 579
첨부  
 

[원북면] 하늘에서 내려온 <학암>

학암이란 글자 그대로 바위의 생김새가 학같이 보인다하여 붙여
진 이름인데, 이 학암은 원북면 방갈리 2구 가시내의 학암포에
있다.

이 학암포에는 큰 분점(大盆店)과 작은 분점(小盆店)이 있는데,
큰 분점의 서쪽 끝 낭떠러지 용낭굴(龍窟) 위의 바위를 일컫는
것이다.

학암포란 명칭은 이 학암에서 연유된 것인데, 1968년 7월 27일
해수욕장의 개장과 더불어 붙여졌다.

그 이전에는 분점포(盆店浦)였는데, 분점포는 본래 조선조 때 중
국 명나라와 교역을 하던 무역항이었다. 양국은 여러가지 물품
을 교역하였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질그릇(동
이 또는 항아리)을 주로 수출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60여년 전만해도 질그릇을 굽던 가마터의 흔적
이 뚜렷하게 남아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 자취 조차 찾아
볼 수 없다. 이렇게 질그릇을 만들어 수출한데서 포구의 명칭을
분점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동이를 만들어 외국에 수출하는 한편 일부는 내수용으로 가
계에서 시판하였으니 그 이름 그대로 동이분(盆)자와 가게 점
(店)자를 붙이어 분점이라고 명명한 것은 매우 설득력 있는 이야
기가 아닐 수 없다. 이같이 분점포는 무역항으로서 활기가 넘치
고, 근해의 어업 기지로서 중선(重船)을 비롯한 많은 어선들의
출입이 잦았던 명실 상부한 어항이기도 했다. 특히 이곳의 어선
들이 어로 작업을 마치고 만선(滿船)으로 입항할 때의 모습은 장
관이 아닐 수 없었다.

오색 영롱한 뱃기를 달고 입항하는데 깃발의 갯수를 보고 그 배
의 어획량과 수익금을 점칠 수 있었다 한다. 이같이 분점포구가
활기에 넘치고 있을 때 가깝고 먼 각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드
나 들었으니 이 포구는 관광지로서의 역할도 겸했던 것이다.

큰 분점의 학암 부근에 진달래꽃이 흐드러지게 필 무렵이면 이곳
으로 꽃놀이 오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특히 서당의 훈장은 학생들을 데리고 이 곳에 와서 글을 짓고 즐
기는 가 하면, 지방의 유지와 유생들은 이 학암 옆에 와서 꽃놀
이를 하면서 운자를 내어 한시를 짓고 읊조리기도 하였다.

비록 시인이 아니더라도 이 아름다운 경치에 접하면 저절로 시상
(詩想)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는 곳이었다. 학암 위에서 바라보
면 사방이 탁 트인 것이 상쾌한 마음을 자아내게 하고, 특히 학
암 앞의 푸른 바다에 오가는 어선들의 황포 돛대는 한 폭의 그림
을 보는 것 같았으니, 이 같은 절경에서 유생들이 시를 짓고 읊
었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사오십년 전만 해도 바위에 써놓은 한시가 눈에 띄었는데, 지금
은 풍우에 깎이어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또한 학암 밑에 있는 용낭굴을 비롯하여 주변의 기암괴석의 절경
은 마치 해금강을 방불할 정도로 아름다우니 이 모습을 보는 사
람들은 저절로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다.

일찍 금송 박승원(琴松 朴昇遠)은 관송 팔경(貫松八景)에서 학암
을 `금지 학암(金池鶴岩)''이란 시제(詩題)로 이렇게 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