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메뉴 닫기
서브페이지 배경
[태안읍] 학을 날려보낸<파명당> 게시판 상세보기

[태안문화원] - 지명 및 전설 내용 상세보기 입니다.

제목 [태안읍] 학을 날려보낸<파명당>
작성자 태안문화원 등록일 2016-06-15 조회 1363
첨부 png 학을 날려보낸 파명당.png

[태안읍] 학을 날려보낸<파명당>

파명당 자리는 현재 태안읍 도내리 1구 53번지에 있는 집터를 말
하는데, 파명당이란 글자 그대로 명당을 파했다는 뜻이다.

즉 명당의 효력이 없어졌다는 말인데, 본래 명당이란 풍 수지리
설에서 말하는 썩 좋은 자리로서 이 곳에 묘를 쓰면 부귀 영화
를 누린다는 것이다. 도내리 1구에 비록 지관이 아닌 일반인이
보더라도 묘자리로서 썩 좋은 자림임을 알 수 있는 명당 자리가
있었기 때문에 노쇠한 부모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한번
쯤 그 자리를 탐내었다 한다.

그런데 이같이 좋은 명당 자리가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안타깝게
도 그 효력을 잃고 말았으니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어느 때인지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먼 옛날 이곳 도내리
마을에 아들만 형제를 둔 노부부가 살고 있었다. 이들 형제 중
형은 어려서부터 남달리 성격이 까다로와 붙임성이 없고 고집이
세어서 항상 말썽꾸러기였다.

이렇게 어려서부터 말썽을 부리던 형은 성장한 뒤에도 그 성격
이 여전히 난폭해서 항상 부모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였다. 집에
서 부모님을 도우며 부지런히 일하기는 커녕 고양이의 손이라도
빌릴 정도로 한창 바쁜 농번기에도 집을 나가 빈둥거리는가 하
면 시비를 걸어 남을 때려주기 일쑤였다. 그런가 하면 남의 집
물건 훔쳐오기가 예사이며, 또 서리를 하다가 주인에게 들키면
오히려 주인을 구타하여 말썽을 일으키는 등 헤아릴 수 없이 온
갖 나쁜 짓만 골라서 하였기 때문에 동네 사람들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었다.

즉 불량배라면서 따돌림을 하였다. 이같이 본래부터 말썽꾸러기
로 자란 아들이니 성장해서도 부모님의 교훈을 받아 들일 리 없
었다.

불효가 막심한 자식이었다. 이로 인하여 부모님의 마음은 한시
도 편안할 날이 없었고, 심지어 울화병으로 자리에 누워 있어야
했다. 그러나 동생은 형과 달라서 부모님에 대한 효성이 지극할
뿐만 아니라, 동네 어른들을 만나면 깍듯이 예의 범절을 지키는
가 하면 동료간에 우애하고 아랫사람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형과
는 매우 대조적으로 그 신망이 두터웠다. 또한 남이 어려운 일
을 당했을 때는 자기 일같이 생각하고 조금도 주점함이 없이 최
선을 다하여 도와주는 봉사 정신이 투철한 모범 청년이었다. 이
렇게 동생은 형과 아주 딴판이었기 때문에 때로는 형의 잘못이
동생으로 인해 보상되기도 하였다. 이렇게 부모 속을 썩이는 망
나니가 있는가 하면, 정성으로 부모를 받드는 효자가 있어 희비
쌍곡선이 부딪치는 환경 속에서 네 식구가 살아가고 있었다. 그
런데 네 식구가 살아가던 어느날 아버지가 노환으로 돌아가시고
말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평소에 말썽꾸러기였던 큰 아들도 숙연한
자세로 무엇인가 반성하는 듯한 기미를 보였지만 특히 평소에 효
성이 지극하기로 이름난 작은 아들은 막상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자 효도가 부족하여 돌아가신 것 같아 서럽기가 한량 없었다.
그러나 이미 돌아가셨으니 사후에나마 극락 세계에 가셔서 고이
쉬실 수 있도록 하여 드려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이름 난 지관을
불러 명당자리를 찾기로 하였다. 동생은 지관과 함께 하루 종일
명당을 찾아 헤메이다 마침내 저녘 무렵에 가서야 좋은 묘자리
를 찾아 내는데 성공하였다.

어렵게 명당 자리를 찾아낸 지관은 동생에게 한가지 주의를 주었
다. 이 자리가 명당자리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한가지 문제점이
있으니, 이점은 나하고 약속을 지켜야지 만약 그렇지 않으면 명
당으로서의 효력을 잃는다고 하였다. “이 자리를 약 두자 반쯤
파들어가면 반드시 커다란 반석이 깔 려 있을 터인데 묘광이 얕
다고 하여 이 돌을 파내면 안 됩니다.

 이 돌을 파내면 이 자리는 명당의 효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이 약속을 꼭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형님이 이것을 보게 되
면 그 성품으로 미루어 보아 틀림없이 이 돌을 캐내어버릴 터이
니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상주로서는 안 된 일이지만 형은 겁살
(劫煞)이 끼어 있어 하관할 때 이를 보면 큰 해를 입게 된다면
서 하관때 참석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관과 동
생이 이렇게 굳은 약속을 하고 동생이 형에게 그 내용을 구체적
으로 설명하니 형도 이를 수긍하는 듯 하였다. 다음 날 장일에
발인하여 하관을 하려는데, 갑자기 형이 달려들어 “마지막으로
가시는 아버님의 모습을 맏상주인 내가 어찌 못 본단 말이냐?”
하며 하관을 살피더니 깜짝 놀라며 “ 아니! 이럴 수가 있단 말
이냐? 광중이 얕을 뿐만 아니라 밑바닥에 암석이 깔려 있는데
이 위에 아버님의 시신을 모실 수는 없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게 무슨 명당 자리란 말이냐? 묘광의 깊이가 두어 자 밖에
 안되고, 게다가 밑바닥에 큰 돌이 박혀 있는데 이 자리가 어떻
 게 명당 자리가 될 수 있다는 말이냐?” 형은 버럭 화를 내면
서 직접 괭이를 들어 광중을 더 파고 인부와 함께 돌을 들어 내
는 것이었다. 아! 이게 웬일인가? 돌을 들어내는 순간 돌 밑에
서 두 마리의 학이 나와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한 마리는 덕송
리에 있는 현제봉으로, 그리고 다른 한 마리는 진장리에 있는 장
군산으로 날아가 버렸다. 이렇게 돌 밑에 있던 학이 날아감으로
써 애석하게도 명당 자리는 효력을 잃게 되었고, 이른바 파명당
이란 이름이 나오게 되었다. 형은 지관의 말을 일고의 가치도 없
다고 무시한 채, 다만 가시적 불합리성을 내세워 자기 고집대로
일을 단행함으로써 결국은 생전에도 불효를 하더니 사후에까지
도 큰 불효를 하고 말았던 것이다. 명당자리에 묘를 쓰면 자식
과 후손들이 부귀 영화를 누리게 된다는 것인데, 결국 자기에게
돌아올 복을 스스로 털어버리고 만 것이었다. 이같은 일이 있은
뒤에 지관들은 물론 동네 사람들까지 학이 날아가 앉았다는 장군
산과 현제봉에 올라가 학이 숨어든 명당 자리를 찾느라고 바쁜
나날을 보냈다는 이야기가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