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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읍] 호랑이 후손들의 삶터<산후리> 게시판 상세보기

[태안문화원] - 지명 및 전설 내용 상세보기 입니다.

제목 [태안읍] 호랑이 후손들의 삶터<산후리>
작성자 태안문화원 등록일 2016-06-15 조회 1065
첨부 jpg 호랑이 후손들의 삶터.jpg

[태안읍] 호랑이 후손들의 삶터<산후리>

산후리는 태안읍의 13개 법정 리의 하나로서 어은리와 삭선리,
그리고 상옥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즉 태안의 진산인 백화산
의 뒷편에 자리잡고 있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이다. 이같이
평화로운 산후리 마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14세기 말엽
인 고려조 말기부터 라고 한다.

그런데 13세기부터 16세기 말엽의 임진왜란직전까지 우리 나라
의 연안은 왜구의 침략이 심하였다. 일본의 역사학자인 가사하라
(笠原一男)의 「일본역사의 군상」에 의하면 13세기 초엽부터 15
세기에 걸쳐서 우리 나라를 침략한 횟수가 무려 392회에 달한다
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 이상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같
이 400회에 가까운 침략을 받는 과정에서 우리 민족이 당한 수모
는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 서산.태안도 예외는 아니어서 1352년부터 1385년 사이에 무
려 10여 회에 걸친 왜구의 침략이 있었는데, 특히 태안 지역에
침입한 횟수가 4회에 이르고 있다. 이 중에서도 1373년에는 왜구
침략의 피해가 특히 심하여 태안군의 행정이 마비되면서 군까지
폐군되어 서산군에 예속케 되었다. 왜구의 침략으로 인하여 하나
의 군이 폐군되어 타군에 예속될 정도라면, 당시 왜구의 침략이
어떠했는지 굳이 묻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때
태안군의 주민들은 고향을 버리고 내륙 지역으로 피난을 가고 있
었는데, 한 부부가 꿈을 꾸니 키가 훤칠한 산신령이 나타나서
“다른 지방으로 피난을 가지 말고 백화산 뒤로 가면 그 곳이  
바로 피난처가 될 것이오. 그 곳은 백화산이 가로 막고 있을 뿐
 만 아니라 사람들이 살고있지 않아 피난처로서 적합한 천연적
 보호지역이니 그 곳으로 가시오.

그런데 백화산은 험한 산이니 넘을 때 조심해야 합니다.” 라고
말해주고는 이내 사라지는 것이었다. 깨어보니 꿈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피난하기에 눈코 뜰 새 없는데, 이들 부부는 정
말 이상한 꿈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
내 이들 부부는 산신령이 가르쳐 준 대로 백화산 뒤로 피난하기
로 결심을 하고 밤에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지금은 백화산에 나
무가 없지만 옛날에는 산림이 무성하고 호랑이와 산적들이 출몰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낮에 산에 오르는 것도 매우 위험한 일이었
다. 그러나 이들 부부는 「산신령이 분명히 산 뒤로 피난하라는
계시를 했으니 우리에게 무슨 변고가 있겠는가」 라고 생각 하면
서, 그래도 우거진 숲속을 조심스럽게 헤치며, 산의 중턱쯤을 오
르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타난 산적에 의해 부인이 봉변을 당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이때 남편은 부인의 수모를 저지하기 위
해 산적들에게 대항하다 결국 혼자 힘만으로 당할 수 없어 쓰러
지고 말았다.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부인은 어찌할 바를 모른
채 그저 공포에 떨고만 있었다.

그런데 어디서 느닷없이 호랑이가 나타나 부인을 등에 업고 어디
론가 쏜살같이 달려 가는 것이었다. 호랑이가 한참 동안 달려가
다 멈추므로 정신을 가다듬고 주위를 살펴보니 뒷편에 수백 년
은 되었을 것 같은 거목이 하늘을 찌를 듯이 버티고 서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느티나무인데 그 밑 부분에 커다란 구멍이 뚫
려 있었다.

그 속을 들여다 보니 넓이가 두어 평 정도 남짓한데 마치 방안같
이 아늑해 보였다. 호랑이와 부인은 이 느티나무 구멍 속에서 함
께 살게 되었다. 그후 부인이 아기를 낳으니, 그가 성장하여 이
곳을 중심으로 생활 터전을 이룩하게 되었고, 또한 세월이 흘러
감에 따라 이 지역에 마을이 형성되어 졌다. 마을 이름도 자연
의 지형을 따서 그대로 산 뒤라고 하였다. 그후 이 「산 뒤 마
을」이라는 우리 말이 그대로 한자어로 바꾸어져 산후리로 불리
게 되었다. 산후리라고 하는 마을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
런 과정을 거쳐서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