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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金大建) 1821-1846 게시판 상세보기

[당진 문화원] - 인물 내용 상세보기 입니다.

제목 김대건(金大建) 1821-1846
작성자 당진문화원 등록일 2004-07-08 조회 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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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명(敎名) 안드레아,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 천주교 성인으 

충청도 면천군 솔뫼(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 솔뫼)에서 출생 

하였다. 본관은 김해이고, 처음이름은 재복(再福), 보명(譜名

지식(芝植)이며, 아버지는 제준인데 그의 증조부인 진후( 

) 10 동안의 옥중 생활 끝에 치명(순교) 당하자 조부인 

택현(澤鉉) 경기도 용인군 내사면 남곡리로 이사하였으므로  

거기서 성장하였다. 그의 부친도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으며

1839 기해박해 당시 한성의 서소문 밖에서 순교당하였다.  

이미 프랑스 신부 모방에 의해 신학생으로 발탁되어 최방제

최양업등과 함께 15세때 마카오 소재 "파리외방전교회" 가게 

되었다. 1846 5 선교사의 입국과 선교부와의 연락을 위한  

입항로 개척을 위해 황해도 등산지방을 답사하다가 순위도에서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다. 전후 6회에 걸친 혹독한 문초를  

하여 국금을 위반하고 해외에 유학한 사실 천주교회의 햅심 

지도자임이 밝혀졌다. 이에 조정에선 그에게 "염사지죄반국지 

(染邪之罪反國支律)"이란 법을 적용하였다. 그는 프랑스선교부 

신부들에게 보내는 편지 교우들에게 보내는 유서를 남긴 

, 그해 9 26 꽃다운 25 나이로 서울 한강 강변 새남터 

(현재 서울 용산구 서부이촌동)형장(形場)에서 군문효수형(軍門 

梟首形)으로 치명(순교)되었다. 그의 시체는 교인들이 비밀리에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미산리에 안장하였다

특기할 사항은 그가 한국 천주교회의 수선탁덕(首先鐸德 :  

성직자라는 칭호)이란 사실 이외에 한국 최초의 근대 유학생 

이요, 한국인 최초의 나침반 사용자이며,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작성보다 16년이나 앞서 이미 1845 "조선지도" 프랑스어로 

작성하여 당시 프랑스 신부들에게 전달됐던 사실이(파리 국립도 

서관 지도부에 소장돼있음)확인되었다는 것과, 또한 그의 서한 

25통이 프랑스어로 씌어져 역시 프랑스에 보존 있으며,  

편전쟁(1840-42) 끝나면서 "난징조약" 체결당시 프랑스 대표 

통역관으로 참석했음과 150년전 그는 5개국어(라틴어, 영어

프랑스어, 중국어, 한국어) 능통했던 어학자였음도 간과해서 

안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