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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흥(南以興) 1576(선조9) - 1627(인조 5) 게시판 상세보기

[당진 문화원] - 인물 내용 상세보기 입니다.

제목 남이흥(南以興) 1576(선조9) - 1627(인조 5)
작성자 당진문화원 등록일 2004-07-08 조회 422
첨부 png 남이흥장군.png

조선중기의 무신으로 본관은 의령, () 사호(士豪), 호는 

성은(城隱)이니 부는 목사 ()이고 모는 전주류씨다. 1598 

(선조 31)정유재란때 노량해전에서 아버지가 적탄에 맞아 전사한 

충격을 받아, 글공부를 중단하고, 궁술(弓術) 기마(騎馬

전념하여 1602(선조35)무과에 급제하였다. 평안도병사로서 

영변부사를 겸임하여 국경방어를 담당하고 있던 1627(인조 5)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안주성에 나아가 후금() 군대를  

지하려 하였다. 이때 후금의 주력부대 3만여명이 의주를 돌파하 

능한산성을 함락한 안주성에 도달하였다. 이에 목사 김준 

(金埈), 우후(虞候) 박명룡(朴命龍), 강계부사 이상안(李尙安) 

독려하여 용전하다가 무기가 떨어져 성이 함락되자, 그는 " 

정에서 나로 하여금 마음대로 군사를 훈련하고 기를 없게  

였는데 강한 적을 대적하게 되었으니 죽는 것은 직책이나  

그것이 한이로다"라고 하며 적을 성안으로 유인하여 화약고 

불을 지르고 뛰어들어 자폭하였다. 조정에서는 좌의정 

추증하고, 의춘부원군을 추봉하였으며 불천지위(不遷之位: 

라에 공을 세워 영원히 제사를 받들다) 내려지고 충장(忠壯

시호와 충진정려를 내렸다. 그리고 나라에서는 그가 최후를 

마친 안주에 충민사를 지어 제향토록 하였다

사당인 충장사와 유물관인 모충관과 묘소와 신도비가 대호지면 

도이리 1구에 있는데 그의 유품은 중요민속자료 21호로 지정 

되었으며, 매년 9 "충장공 남이흥장군 숭모제" 이곳 충장사 

경내에서 거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