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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훈(沈薰) 1901 - 1936 게시판 상세보기

[당진 문화원] - 인물 내용 상세보기 입니다.

제목 심훈(沈薰) 1901 - 1936
작성자 당진문화원 등록일 2004-07-09 조회 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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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시인. 영화인으로 본명은 대섭(大燮), 본관은 청송( 

), 호은 해풍(海風)이고, 아명(兒名)으로 삼준 또는 삼보가  

아버지 상정(相挺) 3 1 3남으로 서울 노량진에서  

생하였다. 1915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고, 1917 

왕족인 이해영(李海瑛) 결혼하였다. 1919 3·1운동에 참가하 

투옥, 퇴학당하였다. 1920 중국으로 망명하여 다음 

(1921) 항저우 치장 대학에 입학하였다. 1923 귀국하여 연극 

·영화·소설집필 등에 몰두하였는데 처음에는 특히 영화에  

관심을 경주하였다

1924년에는 이해영과 이혼하였고 그해 동아일보사에 입사하였 

. 1925 조일제번안의 장한몽이 영화화될 이수일 역으로 

출연하였고, 1926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소설 "탈춤" 동아일 

보에 연재하기도 하였다. 다음 해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본격적 

영화수업을 받은 귀국하여 영화 "먼동이 " 원작집 

·각색·감독으로 제작하였으며, 이를 단성사에서 개봉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식민지 현실을 다루었던 영화는 어둠에서 어둠으로 라는 제목 

말썽을 빚자 개작한 작품이며 영화제작은 이것으로 마지막이 

었다. 1928 조선일보사에 입사했고, 1930 안정옥과  

혼하였다. 1931 경성방송국으로 전직했으나 사상 문제로  

직하였다. 1932 충남 당진군 송악면 부곡리에 내려와 집필에 

전념 농촌계몽소설 "상록수" 써서 1935 동아일보 창간 15 

년기념 현상소설에 당선하였다. 1936 단편"황공(黃公)  

" 신동아에 발표, 상록수의 영화화를 계획하여 각색했으나 

일제의 방해로 실패하였다

또한 사해공론(四海公論) 펄벅의 대지(大地)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번역하여 연재하였다. 1936 손지정 선수가 독일 베를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우승했다는 신문의 호외에 감격하여 

뒷면에 "오오 조선의 남아여!" 즉흥시를 썼던 것이 마지막 

글이었다. "동방의 애인" "불사조" 번에 걸친 연재 중단사 

건과 애국시 "그날이오면"에서 있듯이 그의 작품에는  

민족의식이 담겨져 있다. "영원의 미소"에는 가난한 인텔리 

계급적 저항의식, 식민지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비판정신,  

농의지가 묘사되어 있으며 대표작인 "상록수"에서는 젊은이들 

희생적 농촌사업을 통하여 강한 휴머니즘과 저항의식을 고취 

시키고 있다. 행동적이고 저항적 지성인이었던 그의 작품에는  

족주의와 계급적 저항의식 휴머니즘이 기본정신으로 흐르고 있으 

특히 농민 계몽문학에서 리얼리즘에 입각한 본격적인 농민문 

학의 장을 여는데 크게 이바지한 작가로서의 의의를 지닌다.  

1976 7 10 이곳 당진읍 남산에서 그의 기념시비 상록탑 

건립되었으며 애국시 "그날이 오면" 전문이 음각되어있고  

가을 당진에서는 상록문화제가 거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