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리사
소개
종 목 : 문화재자료 303호
문화재명 : 율리사 (栗里祠) (옛세덕사(世德祠)0
분 류 : 사묘재실
수 량 : 1동
지 정 일 : 1988.08.30
소 재 지 : 충남 서천군 비인면 율리 193
소 유 자 : 평산신씨
관 리 자 : 신동익
내용
1851년 (철종2년) 건립
- 율리사는 고려시대의 명장 신숭겸(申崇謙)을 주벽으로 하여 申賢(신현), 申흔(신흔),申演(신연),申淇(신기),申澈(신철),申澳
(신오) 등 평산신씨 7位를 배향한 사우로, 원래는 문중사우로서
1851년에 세덕사(世德祠)라는 이름으로 건립되었던 것이다. 당시
는 신숭겸, 신철, 신오 등 3위를 제향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1900
년(광무4)에 향중 유림의 공론으로 현재와 같은 사우로 발전 되
었다.
이 사우와 관련된 평산 신씨가 비인지역과 인연을 맺게 되는 것
은 여말선초의 혼란기에 신용(申龍)이 이곳에 은둔하면서 비롯
된 것으로 전해진다. 신용(申龍)은 조선 건국에 반대하여 두문동
에 들어갔던 신기(申淇)의 아들로 그후 신철과 신오의 후손들이
함께 옮겨와 살게 되면서 그 문족들이 번창하게 되었다.
율리사의 발전과정은 우선 1850년(철종 1)에 비인의 사람들이 연
명상언(聯名上言)을 통하여 평산신씨들은 이듬해인 1851년 2월
시조인 신숭겸을 주벽으로 하여 온수감공파의 중시조인 신청, 신
오의 위패를 봉안하면서 세덕사라 칭하게 된다.
1900년(고종 광무8) 향중의 공론을 일으켜 위의 3위 외에 신흔,
신연, 비인파 중시조인 신기 등을 추배하는 율리사로 이름을 바
꾸었다. 이어 1918년에는 사우를 중건하고 1920년 신현을 마져
추배하여 모두 7위를 제향하게 되었다.
건물배치는 사우인 율리사가 내삼문과 담장으로 둘러져 있고, 정
면 3칸 측면 1칸의 방풍벽 맞배지붕이며 안에는 신숭겸을 주벽으
로 모두 7위의 위패와 신숭겸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다. 강당은
1967년 중수된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다. 강당
옆에는 1929년 건립된 율리세덕사유허비(栗里世德祠遺墟碑)가 세
워져 있다.
율리사는 충남도에서 지방문화제 303호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