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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장산리 석불입상

천안 장산리 석불입상

소개

천안 장산리 석불입상(天安 長山里 石佛立像)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56호)

내용

수신면 장산리 장명부락 앞 냇가를 끼고 병천쪽으로 150m 쯤 거리에 3평짜리 건물내에 안치되어 있는 석불입상으로, 원형에 가까운 직사각형의 대좌 가운데 부분을 파서 세웠다. 

높이 191cm, 둘레 56㎝, 머리둘레 52㎝의 화강암제 입상인 이 석불은 조각선이 뚜렷하고 몸에 비해 머리 부분이 크고 어깨는 좁은 고려시대의 불상으로 추정되는데 나발(螺髮:소라모양으로 된 여래상의 머리카락)로 표현된 머리에는 육계(부처의 정수리에 솟아 있는 상투 모양의 혹)가 오똑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풍만한 안상은 직사각형으로 양볼이 나와 있어 자비스런 불성을 나타내고 있다.
두 귀는 길게 목 가까이 내려와 있고 목에는 삼도(三道: 불상 목 주위에 표현된 3개의 주름으로 생사를 윤회하는 인과를 나타냄.)가 분명하다. 두눈과 입은 완전히 보전되어 있으나 코 부분은 파손되었는데, 손상된 부분은 시멘트를 발라 놓았다.
불신 또한 알맞은 비례를 보이고 있으나 어깨가 약간 좁은 듯 하다.
법의는 통견의(通肩衣:부처가 입은 옷으로 양어깨를 가린 형식)이며, 속옷의 끈을 묶은 고름자락이 수인 위에 나타났다. 양손은 배에서 두 엄지를 맞대어 손가락을 합하여 내향하고 있으며 발과 발가락은 뚜렷하게 조각되어 있지만 일직선으로 자른 듯 부자연스러운 모습이다. 법의는 앞의 속옷의 끈을 묶은 매듭이 양쪽으로 나 있다.
이 불상머리 옆에는 머리 부분이 유실되고 어깨와 팔부분에서도 많은 훼손이 가해진 좌불과 불상 근처의 길옆에는 60cm정도의 비석이 있는데 72㎝, 너비 44㎝, 두께 16㎝로 정면에는 강희(康熙) 50년(숙종42년, 1761)이라고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시주한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 비석을 통해 불상도 비슷한 시기에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97년 8월 5일에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56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장산리 마을에서 관리하고 있다.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56호)


수신면 장산리 장명부락 앞 냇가를 끼고 병천쪽으로 150m 쯤 거리에 3평짜리 건물내에 안치되어 있는 석불입상으로, 원형에 가까운 직사각형의 대좌 가운데 부분을 파서 세웠다.
높이 191cm, 둘레 56㎝, 머리둘레 52㎝의 화강암제 입상인 이 석불은 조각선이 뚜렷하고 몸에 비해 머리 부분이 크고 어깨는 좁은 고려시대의 불상으로 추정되는데 나발(螺髮:소라모양으로 된 여래상의 머리카락)로 표현된 머리에는 육계(부처의 정수리에 솟아 있는 상투 모양의 혹)가 오똑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풍만한 안상은 직사각형으로 양볼이 나와 있어 자비스런 불성을 나타내고 있다.
두 귀는 길게 목 가까이 내려와 있고 목에는 삼도(三道: 불상 목 주위에 표현된 3개의 주름으로 생사를 윤회하는 인과를 나타냄.)가 분명하다. 두눈과 입은 완전히 보전되어 있으나 코 부분은 파손되었는데, 손상된 부분은 시멘트를 발라 놓았다.
불신 또한 알맞은 비례를 보이고 있으나 어깨가 약간 좁은 듯 하다.
법의는 통견의(通肩衣:부처가 입은 옷으로 양어깨를 가린 형식)이며, 속옷의 끈을 묶은 고름자락이 수인 위에 나타났다. 양손은 배에서 두 엄지를 맞대어 손가락을 합하여 내향하고 있으며 발과 발가락은 뚜렷하게 조각되어 있지만 일직선으로 자른 듯 부자연스러운 모습이다. 법의는 앞의 속옷의 끈을 묶은 매듭이 양쪽으로 나 있다.
이 불상머리 옆에는 머리 부분이 유실되고 어깨와 팔부분에서도 많은 훼손이 가해진 좌불과 불상 근처의 길옆에는 60cm정도의 비석이 있는데 72㎝, 너비 44㎝, 두께 16㎝로 정면에는 강희(康熙) 50년(숙종42년, 1761)이라고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시주한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 비석을 통해 불상도 비슷한 시기에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97년 8월 5일에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56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장산리 마을에서 관리하고 있다.


자료정리 아우내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