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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수리 석조여래입상

군수리 석조여래입상

내용

보물

 

국립부여박물관

이 불상(佛像)은 백제사원(百濟寺院)에 대한 최초(最初)의 학
술적(學術的)인 발굴조사(發掘調査)였던 부여(扶餘) 군수리(軍守
里)의 한 폐사지(廢寺址)에서 1936年에 수습(收拾)된 것으로 목
탑지(木塔址) 심초석상(心礎石上)에서 보물(寶物) 제330호인 금
동미륵보살입상(金銅彌勒菩薩立像)과 함께 출토(出土)되었다.
유백색(乳白色)의 납석(蠟石)으로 만들었는데, 방형(方形) 대좌
(臺座)위에 결가부좌(結跏趺坐)한
자세(姿勢)로 대좌하단일부(臺座下段 一部)만 남기고 위에는
모두 Ω형으로 조각(彫刻)된 옷주름으로 덮혀 있다.
소발(素髮)의 머리에는 둥근 육계(肉계)가 있으며 의습(衣習)
은 통견의(通肩衣)인데 가슴에는 卍자를 새겼다.
이 불상(佛像)의 독특한 특징(特徵)은 얼굴에서 잘 나타나고
있는데 머리를 번쩍 들고 뺨을 긴장감 있게 묘사하면서도 가득
히 미소를 머금은 풍만한 얼굴은 당대(當代)의 백제불상(百濟佛
像)에서 볼 수 있는 특징(特徵)이라 하겠다. 어깨와 상체(上體)
는 모나지 않고 그대로 두 무릎위에 이어졌는데, 무릎위의 옷자
락으로 팔의 윤곽(輪廓)을 표현(表現)하였다. 이와같이 두꺼운
천의(天衣)의 중후(重厚)한 느낌과 그 옷을 통하여 슬며시 표현
(表現)된 몸의 윤곽(輪廓), 좁은 어깨, 가슴 앞에 모은 두손의
표현기법(表現技法)은 그대로 고식수법(古式手法)이다. 또 두
무릎 위에 올려져 있거나 기댄 듯하며 상체(上體)가 앞으로 숙여
져 있는 자세(姿勢)의 묘사는 규암(窺岩) 신리출토(新里出土) 불
상(佛像)과 서울 뚝섬 출토(出土)의 불상(佛像) 등과 같이 그 전
통(傳統)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신체(身體)에 비하여 선정인(禪定印)을 취하고 있는 손은 좀
큰 편으로 제법 사실적(事實的)인 기법(技法)으로 접근(接近)하
고 있다. 통견의 불의(通肩衣 佛衣)는 가슴에서부터 ∪자형으
로 조각(彫刻)하여 무릎을 지나 대좌(臺座)에까지 이어지고 있
다. 대좌(臺座)의 좌우(左右)에는 ∪자형 옷주름과 더불어 상현

좌(裳懸座)를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