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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수리 금동미륵보살입상

군수리 금동미륵보살입상

내용

보물


국립부여박물관

이 보살상은(菩薩像)은 1936년 부여읍 군수리(扶餘邑 軍守理)
의 백제시대 폐사지(百濟時代 廢寺祉)에서 발굴조사(發堀調査)
에 의하여 수습(收拾)된 것으로 목탑 심초석(木塔 心礎石) 위에
서 다른 1軀의 석조여래좌상(보물 제329호,국립부여박물관 소
장) [石造如來座像(寶物 第329號, 國立扶餘博物館 所藏)]과 함
께 出土되었다.
머리에는 삼산형(三山形)의 보관(寶冠)을 쓰고 있는데 매우 넓
고 큼직하여 두 날개에서 내려지고 있는 풍성한 머리칼과 조화
(調和)하여 마치 삼면관(三面觀)의 얼굴을 표현(表現)한 것처럼
보이는데 이것은 중국(中國)의 동위(東魏)와 서위(西魏)의 보살
상(菩薩像)에서 나타나는 기법(기법)으로, 그들의 영향(影響)을
받은 듯 하나 위풍당당한 얼굴은 둥글고 풍만(豊滿)하며 큰 눈
과 코, 반달처럼 올라간 앙월형(仰月形)의 입에서 표현(表現)된
가득한 미소(微笑)와 함께 승화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신
체(身體)는 두껍고 둔중해 보이는 옷속에 감싸여 그 굴곡이 잘
나타나지 않으나 가슴의 표현(表現)이나 두다리의 묘사 등에서
체구(體軀)의 전모를 알수 있다. 손가락 역시도 얼굴이나 신체
(身體)와 마찬가지로 큼직하고 양감(陽感)있게 처리(處理)하여
굳건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머리칼이나 손과 마찬가지로 천의
(天衣)도 이 보살상(菩薩像)의 특징(特徵)을 결정(決定)지우는
요소(要素)로써 두껍고 묵직하며, 양쪽에 5개의 지느러미형 옷자
락을 표현(표현)하였는데 그 끝이 뻗치는 힘이 다소 약화(弱化)
되었고 특히 이 천의(天衣)는 머리칼과 대좌(臺座)의 연꽃무늬
와 어울려 하늘을 날으려는 듯한 상승의지(上昇意志)를 보여주
고 있다. 그리고 천의(天衣)가 x字形으로 교차(交叉)하는 특징
(特徵)은 동시기(同時期)의 다른 불상(佛像)에서도 자주 표현(表
現)되고 있는 기법(技法)중의 하나이며, 6세기 중엽경의 보살상
(菩薩像)들과 상통(相通)하고 있다. 따라서 이 보살상(菩薩像)
은 서기 6세기경의 백제보살상(百濟菩薩像)으로 중국적인 영향하
에 조형되었으나 백제적(百濟的)인 개성을 발전시킨 당대의 시대

적인 금속공예품(金屬工藝品)으로 평가(評價)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