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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사 극락전

무량사 극락전

내용

보물

 

소재지 :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116

무량사의 금당에 해당하는 건물이다.

무량사의 창건 연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신라 때 창건 되었다 하기도 한, 남아 있는 석조유물로 보아 고
려 초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임진왜란 때 무량사의 모든 건물이 불에 타는 화를 당했다.
극락전은 임진왜란 후 다시 세운 2층의 불전으로 무량사의 중심
건물이다. 외부에서 보면 2층이지만 내부는 1,2층이 터져 하나
의 큰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배흘림 기둥을 썼고, 지붕은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구조기법이 잘 짜여지고 외관이 장중하여 조선중기의 건축양식
을 잘 나타내고 있다.
부여 무량사 경내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극락전은 조선 중기
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극락전은 우리 나라에서 그
리 흔하지 않은 규모가 매우 큰 중층(重層)의 불전건축(佛典建
築)으로서 전통 목조건물의 양식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간
주되며, 보물 제356호로 지정되어 있다 극락전의 구조(構造)를
보면 자연석 기단위에 대형 할석의 덤벙주초석(柱礎石)을 놓고
배흘림이 있는 굵은 원형기둥을 세워 정면5칸, 측면4칸의 비교
적 규모가 큰 평면으로 건립되었는데 2층의 평면은 1층의 내고주
(內高柱)가 2층의 변주(邊柱)가 되어 정면3칸, 측면2칸으로 되었
다. 건물의 입면 구성에 있어서도 1층은 높고 2층은 낮으며 또
평면 넓이도 1층에 비해 2층이 매우 작아 건물전체에 안정감을
보여주고 있다. 창호(窓戶)는 정면5칸중 중앙 어간(御間)에는 4
분합 꽃살문을 양협간(兩夾間)에는 쌍여닫이 정자살문을, 그리
고 양단간(兩端間)에는 외여닫이 정자살문을 달아서 그 크기를
점점작게 만드는 등 창호의 크기와 문양에 변화를 주었으며, 특
히 불전(佛殿) 안으로 들어오는 빛에 부드러움을 주기 위하여 창
살의 깊이를 깊게 하는등 입면구성과 건물 구조에 많은 정성을
드렸다. 건물의 내부에는 우물마루를 깔았는데 주위 4면에 1간통
의 외진공간을 두고 그 안쪽에 3칸×2칸의 평면을 구획하여 고주
를 돌려 세웠다. 불단(佛壇)은 이 중앙부분의 뒤쪽 절반을 차지
하도록 마련되었으며 그 위에는 아미타불(阿彌陀佛)을 비롯한 삼
존불(三尊佛)을 안치(安置)하였다 . 건축양식은 기둥상부를 결구
하고 있는 창방(昌枋) 위에 다시 평방(平枋)을 얹고 그위에 주간
포(柱間包)를 중앙 어간(御間)에 3구, 양협간(兩夾間)에는 1구씩
을 각각 배치한 조선시대 성행하였던 다포양식(多包樣式)으로 되

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