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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암리 와요지

정암리 와요지

내용

사적 


소재지 : 부여군 장암면 정암리 41 외

백제 사비시기(538∼660년)에 도성에서 썼던 기와
와 토기들을 굽던 가마터이다.

1987년 발견된 이래 1991년에 이르기까지 모두 3차례에 걸쳐
발굴 조사가 실시되었다. 6세기 후반∼7세기 전반의 기와가마들
이 원상태로 잘 남아 있어 백제의 기와제작기술을 이해하는데 중
요한 자료가 되었다.
가마의 형태는 풍화된 암반층을 옆으로 파고 들어가 만든 지
하 가마이다. 이러한 형태는 백제 기와제작기술의 영향을 받은
일본에서도 확인된다.
현재 부여 읍내에 있는 군수리 절터, 동남리 유적 등의 백제시
대 건물지에서 나온 연꽃 무늬 수막새는 이 가마에서 나온 것과
꼭 같아 여기서 생산된 기와가 공급된 것을 알 수 있다.
부여에서 백마강을 건너 남쪽의 정암리 내동마을 옆의 북쪽으
로 경사진 산기슭 하단부에 자리하고 있다. 국립부여박물관에 의
해 1988·90·91년 3차례에 걸쳐 조사되어, 백제 가마 11기와 고
려 가마 1기가 발굴되었다. 백제가마는 평요가 5기, 계단식 등
요 1기, 무계단식 등요가 2기인데 모두 화강암풍화토를 파고 만
든 지하식 구조로서, 천정부를 제외하고는 가장 완전하게 남아
있는 백제시대의 기와 가마이다. 이 유적에서는 연화문 와당과
서까래기와, 적자형 전편과 무문전, 망새기와와 토기등이 출토되
었다. 이들 중 특히 연화문와당은 부여 동남리나 군수리에서 출
토된 것과 흡사하여, 이 유적이 당시 도성내에 기와를 번조하여
공급하던 주요 가마토로 밝혀졌다.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전반
에 가장 활발하게 생산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사적으로 지정된

면적은 이 일대 62,402㎡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