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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열사

의열사

내용

문화재자료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조선 선조 8년 (1575)부여현감인 홍가신(1541∼1615)에 의해세워진 사우로 의열사비에 의하면 이 고장 충신인 성충과 흥수, 계백의 충절과 고려말 신돈을 탄액하다 물러난 이존오의 충의사가 후세에 전하여지지 않는 것을 한탄하여 사우를 짓고 제사를 지냈다 한다.선조 9년 (1576)에 초창하였고 선조10년(1577)에 사액을 받았으며, 인조 19년(1641)에 중수하였다. 고종 3년 (1866)에 철폐되었다가 복원되었는데 원래는 용정리 망월산에 있던 것을 1971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처음에는 삼충신과 이존오 4인의 위패를 모셨으나 후에 선조때의 지사인 정택뇌(1587∼ ?)와 인조때의 문신 황일호(1588∼1641) 등 6명을 배향하여 매년 음력 3월20일과 9월 20일에 제향하고 있다.
사우 입구 삼문을 들어서면 정면 3, 측면 3칸의 평면으로 구성된 사우가 있다. 측면 3칸중 전면 1칸은 전퇴로 만들었고 나머지 2칸은 통칸으로 하여 6인의 위패를 모시는 넓은 공간을 만들었으며, 창호는 전면에만 각 칸에 4분합 띠살 들어 열개를 달아연목에 달려있는 걸쇠에 걸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