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미륵보살 반가상
내용
국보
소재지 : 국립부여박물관
높이 80cm. 삼국시대에 유행한 반가사유상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불상으로, 오묘한 표정과 의문(衣文)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얼굴이 풍만하고 눈꼬리가 약간 올라갔으며, 입가에는 신비로운 미소를 띠었다. 복잡한 보관(寶冠)을 쓴 머리에서 내려오는 두 가닥의 드리개[垂飾]가 보발(寶髮)과 함께 어깨까지 늘어졌다. 가슴 앞에 짧은 장식이 있고, 두 어깨를 덮은 천의(天衣)는 날개처럼 옆으로 퍼지면서 앞면으로 늘어져 무릎 위에서 X자형으로 교차되었다. 나형(裸形)인 상반신과 가는 허리가 신라불상의 전형을 보여준다. 두 팔에는 팔찌를 끼었고, 왼손은 반가(半跏)한 오른발을 잡고 있으며, 오른손은 오른쪽 무릎에 팔꿈치를 얹고 손가락을 볼에 대어 사유(思惟)하는 상을 나타내었다.
왼발은 밑으로 늘어뜨려 단판 연화좌(單瓣蓮華座)를 밟고 있다.하반신에 걸친 상의(裳衣)는 배 앞에서 매듭을 지어 내려오면서 도식화(圖式化)된 옷주름을 가늘게 표현하였고, 왼쪽에 1가닥의 끈이 드리워졌다. 뒷머리 부분의 흔적으로 보아 원래 광배(光背)가 있었던 것 같다. 균제된 자세, 명상에 잠긴 오묘한 모습, 우아하고 화려한 옷무늬 등이 뛰어나다. 이 불상은 한국원자력연구소에서 코발트 60의 방사선을 투과, 촬영한 결과, 7~8세기경 머리 부분과 몸체 부분을 따로 주조한 다음 연결, 용접하여 만들어졌음이 확인되었다.
왼쪽 무릎위에 오른쪽 다리를 걸치고 고개숙인 얼굴의 뺨에 오른 손가락을 살짝대어 깊은 명상에 잠긴 모습은 부처가 출가 전에 인생무상을 사유(思惟)하던 모습에서 시작되었다한다.
안정된 형태와 부드럽고 우아한 자세, 나신의 상체에서 보이는 인체미, 의습의 입체적인 표현과 미소를 머금은 얼굴 표정 등은 법열(法悅)의 극치를 자아내는 사유형(思惟形)의 반가상(半跏像)으로 백제인(百濟人)의 종교적(宗敎的) 예술성(藝術性)을 잘 표현한 우리나라 불상조각(佛像彫刻)을 대표하는 명품(名品)이다.
우리의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은 일본(日本)의 비조(飛鳥), 백봉시대(白鳳時代)에 많은 영향을 주어 황륭사(廣隆寺)와 중궁사(中宮寺)의 반가상(半跏像)을 만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