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감조후용희휼민선정비
내용
금석문명칭 | 현감조후용희휼민선정비(縣監趙侯瑢熙恤民善政碑) | ||||
조성년도 | 1882년(壬午 四月 日) | ||||
제원(㎝) | 석질 | 두께 | 가로 | 세로 | 형식 |
비개(碑蓋) | | | | | |
비신(碑身) | 화강암 | 21 | 56(상) 50(하) | 146 | 원수(圓首)무문(無紋) |
비대(碑臺) | | | | | 망실(亡失) |
기록자 | 찬자(撰者) | 두전(頭篆) | 서자(書者) | 각자(刻者) | 서단(書丹) |
| | | | 탈색(奪色) | |
조각특징 | | ||||
석문 및 해석 | [전면] 縣監趙侯瑢熙恤民善政碑(현감조후용희휼민선정비) 敦風愛民 於變斯境(풍속을 돈독히 하고 백성을 아끼니 고을 백성이 변하고) 治副一規 幣捄三政(정치는 법도 있게 하여 국가재정인 삼정의 폐단에서 구했구나) [후면] 壬午 四月 日(임오 사월 일) | ||||
이력 및 활동사항 | <현감조후용희휼민선정비(縣監趙侯瑢熙恤民善政碑)>는 조용희(趙瑢熙, 생몰년미상)가 1880년(고종 17) 당진현감에 재직하였다. 1882년(고종 19) 당진읍 교동리 대차골에 건립한 선정비이다. 조용희(趙瑢熙, 생몰년미상)는 조선후기 문관으로 경상도(慶尙道) 영산현감(靈山縣監, 1878년 6월(六月)을 역임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