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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태사(開泰寺)

개태사(開泰寺)

내용

연산면 천호리 천호산 기슭에 개태사가 있다. 개태사는 고려 태 

조 왕건(王建)이 후삼국 통일기념으로 세웠던 국립대사찰이었다.

전성기엔 천여명의 승려가 상주하였고, 한때는 8만9암자가 이절
에 소속되었다 하며 대각국사의 장경불사도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고 한다.
고려말 왜구의 침입으로 쇠퇴하기 시작하여 폐사된채 내려오다
가 1934년 김광영 불자에 의해 재건되어 한때는 개태 도광사라
칭하였다.

그후 개태사라 본래의 이름으로 바꾸고 1989년 미륵 삼존불 복
원사업이 전개되어 대법당이 건립되었다. 현재 개태사는 미륵 삼
존불상, 5층석탑, 개태사 철확등이 있다.

▶개태사 솥 뚜껑과 둠벙 배미

연산면 천호리 개태사앞 철길 서쪽에 8마지기 정도의 논과 밭
이 있는데 옛날에는 둠벙이 있었고 여기에 개태사 가마솥 뚜껑
이 묻혀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가끔 쇠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특히 고을 원님이 백성
들을 괴롭히면 논에서 쇠울음 소리가 더 크게 들려왔다. 그래서
사람들은
「개태사 솥 뚜껑이 틀림없어. 땅 속에 묻혀서까지 이 마을을 지
켜주는 거여.」
라고 하였다. 그리고 땅속에 묻혀 있는 개태사의 솥뚜껑에 대하
여 더욱 신기리게 생각하였고, 쇠울음 소리가 나는 논은 지대가
낮아 마치 둠벙처럼 생겼다 하여 「둠벙배미」라고 부른다고 한
다.

▶ 힘을 솟게 하는 개태사의 장군바위와 약수

옛날 개태사에 성질이 난폭한 목된 중이 하나 있었다. 신혼부부
가 지나가면 신랑을 죽이고 신부를 겁탈한 후 죽이곤 하였다. 어
느날이었다. 어느 신혼부부가 지나가게 되었다. 그때 그중이 나
타나서 신랑을 죽이고 신부를 데려다가 살았다. 세월이 지나 신
부는 그 중의 아들을 낳게 되었다. 아들은 점점 자라 이제는 사
리판단을 할 정도가 되었다. 신부는 아들을 불러 놓고 사실 얘기
를 들려주고 원수를 갚아 달라고 했다.
그러나 중의 힘이 어찌나 센지 아들의 힘으로는 당할 수가 없
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그 다음 날부터 중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
지 살피기 시작하였다. 아침 일찍 중은 장군바위 쪽으로 가더니
그 아래 약수를 마시고 장군바위를 두서너번씨 들어보곤 하였
다. 그 다음날 부인은 아들에게 약수를 마시게 하고 바위를 들어
보게 하니 바위가 불끈 들리는 것이었다. 이와같이 하여 그 중
을 죽이고 어머니의 원수를 갚었다고 전해온다.
지금도 개태사 뒤에 중이 들었다던 장군바위가 남아있다.

*참고-論山地域의 地名由來(1994년12월25일,논산문화원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