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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의사(崇義祠)

숭의사(崇義祠)

소개

구 분  문화재자료 제300호 (1988. 08. 30 지정)
분 류  유적건조물/인물사전/인물기념/사우
소재지  충남 태안군 남면 양잠리 338
시 대  조선 철종(哲宗) 2년(1851)
규 모  한식와가,사우­정면 3칸,측면 2칸,내․외삼문,동․서양재
수 량  1동 (19.53㎡)
소유자  소주가씨 종중
관리자  가덕소

내용

 숭의사(崇義祠) 양잠리의 망재산 기슭에 위치하고 있으며,소주가씨(蘇州賈氏) 중시조(中始組) 가유약(賈維) 그의 아들인 가상(賈想), 손자인 가침(賈琛) 신주를 모신 사당(祠堂)이다

 

규모는 외삼문(外三門) 서양재(西兩齋),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외삼문(外三門) 평대문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양쪽에 서양재가 위치하고 중앙의 계단을 오르면 솟을대문 형태의 내삼문(內三門) 있다. 사우(祠宇) 정면 3, 측면 2 규모의 맞배지붕,도리식의 건물로 건립되었으며 소주가씨 3대를 모시고 있는 곳으로 조선(朝鮮) 철종(哲宗) 2(1851) 왕명에 따라 지어졌다 한다

가유약은 중국의 장군으로 선조 26(1592) 임진왜란(壬辰倭亂) 일어나자 이여송(李如松) 함께 내조(來朝)하여 왜군(倭軍) 무찌르는데 () 세우고 선조29(1595) 귀국하였다

그후 선조 31(1597) 정유재란(丁酉再亂) 일어나자 가유약은 아들 가상 장군과 손자인 가침을 데리고 다시 내조하여 왜적과 싸우다가 지금의 부산 전투에서 가유약과 가상이 전사하였다. 이에 손자인 가침은 조부와 부친의 시체를 거두어 장사(葬事) 지내고 시묘(侍墓)하였으며, 일생을 우리나라에 살면서 왜국 쪽을 향해 한번도 앉은 적이 없다고 전한다

가침의 아들인 (), (), (), () 4형제가 조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중국과 가까운 태안(泰安)으로 왔다가 선편(船便) 여의치 못해 돌아가지 못하고 이곳 태안에 정착하게 되었다한다

 

, 후손(後孫)들이 선대(先代) 유공(有功) 조정(朝廷) 건의하여 숭의사를 건립하였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