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동문리마애삼존불입상[泰安東門里磨崖三尊佛立像]
소개
구 분 국보 제307호 (2004. 08. 31 지정)
※보물 제432호(1966. 02. 28 지정)에서 국보로 지정 됨.
분 류 불교조각/석조/불상
소재지 충남 태안군 태안읍 동문리 산42
시 대 삼국시대(백제시대) 6~7세기
규 모 화강석, 높이: 좌측여래상:306cm, 중앙보살:223cm, 우측여래상:296cm
수 량 1좌
소유자 국유
관리자 태안군
내용
국보 제307호로 지정된 이 태안마애삼존불은 태안읍사무소 뒤에 우뚝 솟아 있는 백화산 중턱에 자리한 태을암(太乙庵)의 동쪽 약 50미터 지점에 있는 자연 거석의 암벽에 조각된 삼존불상(三尊佛像)을 지칭하는 것이다.
좌불3.06m, 우불2.96m, 중앙보살2.23m의 크기로 2여래 1 보살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우리나라 마애불상의 초기 예로 부채꼴 바위 면에 사각형 감실을 마련하여 중앙에 보살상을 두고 좌우에 불상을 배치해 놓음으로써, 1 구의 불상과 2구의 보살상으로 이루어지는 일반적인 삼존불상과 달리 2 구의 불입상과 1구의 보살입상이 한 조를 이루는 특이한 삼존불상 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2구의 불입상은 양감 풍부한 얼굴에 크게 번지는 미소, 넓게 벌어진 당당한 어깨와 장대한 체구, U자형 주름과 y형 내의가 보이는 착의법, 도톰한 듯 날카로운 대좌의 연꽃무늬 등 세부적으로는 거의 동일한 양식 특징을 보인다. 좌우 두 불상 사이에 끼여 있는 듯 뒤로 물러나 작게 새겨진 보살입상은 높은 관에 아무런 무늬도 나타나 보이지 않지만 본래는 장식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타원형으로 길고 통통한 얼굴은 잔잔한 미소를 머금어 원만상이며, 신체는 원통형으로 직립해 있다. 어깨를 덮어 내린 천의는 길게 내려와 무릎 부분에서 X 자형으로 교차하며 묵중하게 처리되었으며 배 앞에 모은 두 손은 오른손을 위로 하여 보주를 감싸 쥔 이른바 봉보주인(捧寶珠印)을 나타내고 있다.
불신의 하반부가 노출되어 백제시대의 연화대좌가 확인됨으로써 그 도상적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다. 중국과의 교류상 요충지에 자리함으로써 6세기 중반 경 중국 북제양식 불상과의 영향 관계 파악에 매우 중요한 작품이며 서산마애삼존불상(국보 제84호)에 선행하는 조형양식을 지닌 백제 최고(最古)의 마애불상이란 점에서 국보로서의 가치가 인정되는 것이다.
태안읍의 해안가에는 백화산(白華山)이 자리하고 있는데,이 산의 정상부근에 백제시대(百濟時代)의 대표적인 마애불(磨崖佛)로 불리어지는 태안 마애삼존불(泰安 磨崖三尊佛)이 위치하고 있다.높이 394cm, 폭 545cm의 동(東)쪽을 향한 암벽(巖壁)에 감실(龕室)을 조성하여 양각(陽刻-돋을새김)되어 있다.
일반적인 삼존불의 배치형식은 중앙(中央)에 본존불(本尊佛)을 좌(左)․우(右)에 협시보살(脇侍菩薩)을 배치하는 형식이나 이 마애불은 가운데 보살상(菩薩像)을 중심으로 좌(남)․우(북)측에 여래상(如來像)을 배치하고 있는 특이한 형식으로 지금까지 발견된 불상 중에 전 세계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형식이라 한다.
좌측의 여래상은 머리는 소발(素髮)이며 팽이 모양의 작은 육계(肉髻)가 표현되어 있고, 양쪽 귀는 크고 길며, 눈은 내려 뜬 모습으로 둥글고 풍만한 얼굴을 갖고 있다.
법의(法衣)는 통견(通肩)으로 되어 있으며, 배 부분에는 띠매듭 모양과 ‘U’자형의 옷주름 모양을 표현하고 있다.
수인(手印)은 시무외인(施無畏印)의 모습으로 오른손을 들어 끝의 두 손가락을 구부리고 있으며,왼손은 합(盒) 형태의 물건을 쥐고 손등을 바깥으로 내보이고 있다.
우측의 여래상은 좌측의 여래상과 비슷한 형태로 제작되어 있으나 수인에 있어서 왼손가락을 구부린 통인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점이 다르다.
가운데 보살상은 부드러운 여성적인 이미지로 양쪽의 여래상보다 작은 모습으로 제작되었다. 머리에는 삼산보관(三山寶冠)을 쓰고 있으며, 꽃문양 같은 장식이 있고, 양옆으로 수식(垂飾)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다.
법의는 아래로 쳐져 있으며, 무릎 부분에 띠 매듭 같은 장식을 볼 수 있다. 양손은 모아서 오른손이 위에 왼손을 아래로 포개고 있는데, 보주(寶珠) 같은 것을 쥐고 있다.
원래 이 마애불은 하부(下部)가 땅속에 묻혀있어 하부 구조(構造)를 알 수 없었으나, 1995년에 불상 하부를 발굴하여 연화대좌(蓮花臺座)가 있는 것을 확인하였으며, 마애 석굴(石窟)사원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이 마애불은 중국(中國)의 석굴 외벽(外壁)에 세워진 불상들과 닮아 태안의 지역적인 특성으로 중국의 문화가 백제와의 해상교류(海上交流)를 통하여 유입(流入)된 우리나라 최초의 예(例)로 보이며, 이 같은 양식(樣式)은 중국의 북제시대(北齊時代)에 주로 나타났던 것으로 보아, 이 마애불의 제작 연대를 약 6세기경으로 추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