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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흥성[安興城]

안흥성[安興城]

소개

구 분  기념물 제11호 (1973. 12. 24 지정)
분 류  유적기념물/정치국방/성/성곽
소재지  충남 태안군 근흥면 정죽리 1112-1
시 대  조선 효종(효종) 6년(1655)
규 모  석성, 넓이­70,806㎡, 둘레 1,500m
소유자  사유
관리자  태안군

내용

 안흥성(安興城)은 태안반도(泰安半島)에 축조(築造) 된 석축성(石築城)으로 전체적인 규모는 둘레1,568m, 높이 3.5m이다

 

조선(朝鮮) 효종(孝宗) 6(1655)에 축조되었으며 처음의 이름은 안흥진성(安興鎭城)이었으나, 후에안흥성이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 한다

 

이성은 효종 때의 경기사(京畿使)인 김석견(金石堅)이 상소(上訴)하여 안흥진성의 축조를 청원(請願)하니왕은 지경연사인 이후원(李厚源)을 불러 안흥진성의 축조를하문(下問)하여 이 지역이 해변으로 약 10여 리 돌출(突出)하여있는 천연적(天然的)인 요새지(要塞地)라는 말을 듣고 효종은 즉시 충청감사(忠淸監司)에게 성()을 축조하게 하여 인근 19개 지역,즉 태안(泰安), 서령(瑞寧), 해미(海美), 덕산(德山), 예산(禮山), 당진(唐津), 면천(沔川), 홍주(洪州), 결성(結城), 보령(保寧), 남포(南浦), 서천(舒川), 한산(韓山), 임천(林川), 홍산(鴻山), 청양(靑陽), 청주(淸州), 충주(忠州) 등지(等地)의 군민(郡民)이 동원되어 10년만에축조된 것이라 전한다

 

안흥성의옛 기록을 보면「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에「安興粱戌 所斤浦僉節制使分兵戌之(안흥량술 소근포첨절제사분병술지)」라 기록되어 있으며,「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安興鎭, 西四十里……孝宗四年移設花亭島六年士人金石堅請建置說鎭城周三千六百二十一尺 顯宗十年還于本鎭有制勝樓待變亭泰國寺倉三 水軍僉節制使一員(안흥진, 서사십리……효종사년이설화정도육년사인김석견청건치설진성주삼천육백이십일척현종십년환우본진유제승누대변정태국사창삼 수군첨절제사일원)」이라 하였고,이외 읍지(邑誌)에도 기록이 남아 있다

 

이후조선 고종(高宗) 31(1894)에있었던 동학혁명(東學革命)의 영향으로 성내(城內)의 건물이 일부 소실(消失)되고 폐성(廢城) 되었는데, 그후 광무(光武) 5(1901)에 일부 남은 건물을 뜯어다, 태안군청과 그 부속 건물을지을 때 사용되었다 한다. 당시 안흥진성의 규모를 살펴보면 동헌(東軒), 책실(冊室), 내아(內衙), 내관청(內官廳), 외관청(外官廳), 비자청(婢自廳), 막비청(幕裨廳), 중방청(中房廳), 감관청(監官廳), 통인청(通引廳), 급창청(及唱廳), 관노청(官奴廳), 사령청(使令廳), 헐수청(歇守廳), 작청(作廳), 형리청(刑吏廳), 장교청(將校廳), 대도안청(大道案廳), 교련청(敎鍊廳), 능로청(能櫓廳), 장대(將臺), 영사대(永思臺), 연습대(練習臺), 흥학대(興學臺), 객사(客舍), 홍살문(紅箭門), 오리정(五里亭), 대변정(待變亭), 반구정(反求亭), 어변정(邊亭), 육모정(六模亭), 팔모정(八模亭), 검소루(劍嘯樓), 폐문루(閉門樓), 제승루(制勝樓), 망해루(望海樓), 대장막(大將幕), 중군막(中軍幕) 등으로 이루어졌으며 동문(東門)은 수성루(守城樓), 서문(西門)은 화홍루(華紅樓), 남문(南門)은 복파루(伏波樓), 북문(北門)은 경성루(頃城樓)라 불렀다. 현재 성곽(城郭)과 동()․서(西)․남()․북()의 성문터(城門攄)는 비교적 원형(原形)대로잘 남아 있다

 

서문은높이 280cm, 넓이 235cm, 깊이 550cm의 규모이며 양쪽으로 쌓아올린 육축(陸築)위에 수매의 장대석(長大石)을얹어 놓은 평거식의 형태이다. 남문과 북문의 형태도 이와 비슷한 규모로 축조되어 있다. 이에 비해 동문은 통로의 윗 부분을 둥글게 만들어 홍예식(虹霓式)의 형태를 보이는데 비교적 파손이 심한 편이다. 안흥성의 출입문 중에서문을 제외한 각() ()은 산능선의 다소 낮은 부분에 자리하고 있고, 서문은 바닷가와 접하여만들어져 있다

 

성벽(城壁)은 지형을 적절히 이용한 능선상(稜線上)에 축조되었는데, 편축(片築)으로 되어 있으며, 성벽의안쪽으로는 폭 8~10m 가량의 내호(內壕)가 만들어져 있다

 

북면이 바다와 접해 있는 안흥성은 서해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으며, 서해안을 지키는 관문으로서 군사적으로 중요한 요충지(要衝地)였다